에스벤베르크 영웅담 - 1. 배달된 소년 (1)


Saga ~ 에스벤베르크 영웅담 ~




1. 배달된 소년 (1)

눈앞에 있는 여자가 굉장히 아름다워서 꿈을 꾸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 챘다. 게다가 내가 그걸 깨닫자마자 여자는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아, 이건 꿈이야.”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의심할 필요가 뭐 있을까. 내가 마주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재미있다는 투로 까르르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머니도 아닌 여자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건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 꿈속인데도 그 손길은 굉장히 부드럽고 따듯했다.

“꿈에서 깨면 놀랄 일이 생길거야.”

자세히 들어보면 어머니와도 닮은 그 목소리에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조용히 머리에서 손을 떼고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뜨거운 입술의 감촉이 뺨에서부터 얼굴전체로 퍼져나간다. 나는 그 뜨거운 감촉에 천천히 눈을 떴다.

“웃!”

눈을 찌르는 날카로운 햇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며 얼굴을 돌리자 귓가에서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없게도 햇빛을 받아 따듯하게 달구어진 붉은 모래가 눈앞에 있었다.

“어…….”

놀라서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눈에 보이는 곳에는 모두 새빨간 모래뿐. 지평선 끝까지 온통 사막이었다. 어이가 없는 것을 떠나 머리가 이상해질 지경이었다. 분명히 어제는 간만에 느긋한 토요일이라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다가 그대로 소파에서 잠들었다. 그 증거로 지금 내 옷차림은 목이 늘어난 반팔 티셔츠와 김치 국물 자국이 남은 반바지, 어제 잠들기 전에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잠들기 전까지 본 SF영화도 딱 이런 분위기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녀, 배경은 온통 사막. 하지만 꿈이라고 보기에는 발바닥에 와 닿는 모래의 감촉이나 후끈한 열기는 너무나도 사실적이었다. 눈을 찌르는 햇살을 피해서 신기루처럼 너울거리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사막 가운데 새하얀 무언가가 거대하게 솟아있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새하얗게 깎여나간 것일까. 끝이 뾰족한 상아 같은 그 모습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겉을 만지자 매끈거리는 감촉이 손끝에서 전해져왔다.

“설마…….”

주위를 둘러보니 그것들은 사막의 이곳저곳에 버려지듯 솟아있었다. 길이도 제각각 굵기도 제각각인 그것들은 마치 무언가의 뼈처럼 보였다. 그것을 깨닫자 사막전체가 거대한 묘지처럼 느껴져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돋아난 소름을 가라앉히려 목덜미를 쓰다듬던 나는 처음 보는 목걸이가 목에 걸려있는 것을 깨달았다. 두꺼운 사슬 끝에 개나 늑대 같은 동물의 머리모양을 본뜬 장식이 달려있는 투박한 디자인의 목걸이. 돌덩이를 깎아 만든 것 같은 묵직한 머리의 눈동자에는 은은한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뭐야…….”

난생처음 보는 목걸이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사막에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뼈들. 꿈이라면 빨리 깨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아까 그 여자가 꿈에서 깨워주었다. 사람은 적당히 놀라야 놀란 척도 할 수 있는 거지, 이렇게 말도 못하게 황당한 상황에서는 그저 막막할 뿐이다. 그저 새하얀 뼈에 기대어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새빨간 점이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모래바람이 부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붉은 점은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막 저편에서부터 붉은 망토를 펄럭거리며 다가오는 그 모습은 분명 사람의 모습이었다. 입가에는 담배를 문채, 붉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온 남자는 모자의 차양을 조금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속달(速達)인가.”

붉은 망토 같은 옷차림과 붉은 모자, 거기다가 어깨에 메고 있는 낡은 가죽가방까지. 마치 우체부 같은 옷차림의 그 남자는 얼굴에 은색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과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입매만을 드러내고 얼굴전체를 가리는 단순한 디자인의 가면. 내가 멍하니 그 가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체부는 내 어깨를 잡아 가볍게 뒤로 돌렸다.

“꽤나 멀리서 왔나보군.”

기가 막힌다는 투로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어깨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우표들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옷자락을 잡아당겨 확인해보니 우표들은 어깨뿐만 아니라 등에도 온통 붙어있었다.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 그 우표들을 잡아당기고 있자니, 우체부는 재미있다는 눈으로 내 몸을 훑어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놀란 듯한 우체부의 목소리에 시선을 떨어트린 나는 그가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게 뭔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이곳이 대체 어디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저, 실례합니다만.”
“!”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우체부는 눈을 날카롭게 뜨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것 같은 그 놀란 얼굴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눈앞의 우체부가 하는 말은 분명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알아듣고 대답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난 외국어라고는 인사말밖에 모르는데 말이다.
역시 계속 이어지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꿈에서 깨어나도 꿈속인 그런 꿈.

“에스벤베르크어를 할 줄 아는 건가?”
“에스……뭐라고요?”
“에스벤베르크. 아홉 신이 만든 세계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 우체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망연하게 고개를 내젓자 우체부는 입매를 일그러트리며 모자의 차양을 매만졌다.

“기다리던 녀석이 배달된 것 같군.”
“에……기다리다뇨? 저를요?”

우체부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붉은 망토 같은 제복을 펄럭이며 멀어져가는 우체부. 영문도 모른 채 터무니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홀로 버려진 불쌍한 청소년을 만났는데 그대로 떠나다니 참으로 메마른 남자였다.
……아니. 이런 말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같이 가요!”

황급히 우체부의 뒤를 따라 달려가며 외쳤지만 우체부는 멈추는 시늉도 해주지 않았다. 그는 대신 느긋한 동작으로 담배를 꺼내 물고는 성냥으로 불을 붙이며 무뚝뚝한 말투로 내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지?”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제 이름도 몰라요?”
“온다는 건 알았지만 뭐가 올지는 몰랐거든.”

잘 이해가 안가는 소리를 하며 우체부는 나를 바라보았다. 푸른빛의 담배연기가 천천히 위로 피어올라 그의 가면을 휘감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눈을 사로잡았다. 우체부는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내고는 모자의 차양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내 이름은 울프하트 포레스트다. 길면 울프하트라고만 불러.”
“네 글자도 제법 긴데요…….”

멍하니 그렇게 대답하던 나는 우체부가 내가 이름을 밝히는 걸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전 노희…….”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까맣게 물들였다. 목구멍까지 솟아나왔던 이름이 이상하게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럽다. 내가 뭘 생각해내려고 했었더라. 멍하니 고개를 든 나는 나를 바라보는 가면 쓴 우체부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이름. 내 이름을 말해야지. 내 이름은 그러니까……

“이름이 로히냐.”
“아. 예. 그거요.”

우체부가 말해준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끼어있던 검은 것이 사라졌다. 어라, 난 방금 전까지 뭘 고민하고 있던 거지. 역시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인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것 같다. 열을 너무 받은 뜨거운 이마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우체부는 잠시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꼭 지금 정한 이름 같군.”
“그건 이 동네 농담이에요?”

찌는 것 같은 더위는 짜증도 가중시킨다.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우체부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곤 다시 뒤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 등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문득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발바닥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뜨거운 이 사막은 한 걸음만 걸어도 두텁게 쌓인 모래가 발을 푹푹 빨아들였다. 하지만 우체부는 마치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모래 바닥 위를 걸어 나가고 있었다. 어깨에 무거워 보이는 가죽가방까지 들고 있었지만 낡은 가죽 구두는 사막에 전혀 빠져들지 않았다.

“몸무게가 엄청 가벼우신가 봐요.”
“하늘을 날수 있을 정도로.”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우체부. 쪄 죽을 정도로 더운데 담배를 입에 물고 있고 싶을까.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부채질을 하고 있자니 문득 지평선 저편에 기다란 회색의 띠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수도인 하이베르크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곳부터가 진짜 에스벤베르크라고 할 수 있지.”

친절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태도로 설명하며 우체부는 다 피운 담배를 손안에서 짓뭉갰다. 흰 장갑 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뜨악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우체부는 나를 흘끔 곁눈질하며 손바닥을 쫘악 펴보였다.

“엇…….”

분명히 불이 붙어있는 담배꽁초를 손으로 쥐어 꺼트렸는데도 불구하고 우체부의 흰 장갑은 탄 자국은커녕 그을음도 없이 깨끗했다. 우체부는 그대로 손을 가볍게 털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기 하얀 건물이 보이나?”

우체부가 가리키는 곳에는 그의 말대로 하얀색의 작은 건물이 있었다. 사막이 끝나는 곳에 덩그러니 지어져 있는 그 하얀 건물은 왠지 모르게 사막에 버려져 있는 커다란 뼈들을 연상시켰다.

“우체국이다.”
“……우체국을 이런 사막에 지어놓으면 누가 편지를 부치러 와요?”
“아무도 안 오지.”

우체부는 씁쓸하게 웃고는 빠른 걸음으로 우체국 쪽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 우체국에 다가가 보니 새하얗게 보이던 우체국은 사실 잿빛에 가까웠다.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 목조건물인데다가 벽에는 그을음과 모래가 묻어 상당히 초라해보였다. 하지만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고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사막에 버려져 있던 거대한 뼈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모래 바람 불기 전에 빨리 들어와.”

뒷문을 열어두고 삐딱하게 서있는 우체부의 목소리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사막에 지어진 지저분한 벽을 보고 익숙함을 느끼다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잔뜩 긴장해서 쭈뼛거리며 문안으로 몸을 들여놓자. 우체부는 망토를 크게 휘둘러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문을 닫았다.
좁다란 우체국 내부에는 우편물 접수를 하는 곳이 하나, 작은 책상이 하나, 그리고 소파에 늘어져 졸고 있는 검은 피부의 우체부가 한명 있을 뿐이었다. 벽에는 기념우표로 보이는 것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있고 천장에는 난생 처음 보는 지도가 붙어있었다.
구석에 서있는 옷걸이에는 우체부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붉은 색의 망토가 몇 벌 걸려있고 낡아 보이는 난로 위에서 주전자가 끓고 있는 모습이, 우체국이라기보다는 복덕방이나 오래된 간이역을 떠올리게 했다. 그 늘어질 것처럼 노곤한 분위기에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마법사님. 그 아이가 배달된 건가요?”

하나뿐인 책상에 앉아서 뭔지 모를 책을 읽고 있던 중년 부인이 나와 우체부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마른 몸에 눈가와 얼굴에 주름이 약간 있었지만, 길지 않은 단발머리는 새까맣고 윤기가 돌았다. 입고 있는 옷은 우체부의 옷이 아니라 평범한 치마와 블라우스 차림이었는데 오른손에서 반짝이는 신기한 모양의 반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장신구도 하고 있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편안한 인상을 풍기는 부인으로 나이는 아무리 많아도 쉰 살이 넘을까 말까하는 정도였다.

“그래. 게다가 우리말을 할 줄 알더군.”
“어머, 정말요?”

부인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에 나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밝혔다.

“안녕하세요. 로히라고 합니다.”
“어머, 어머.”

그녀는 놀랍다는 투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끼고 있던 알이 작은 안경을 벗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크고 까만 눈은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와도 닮은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부인은 새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하는 우체부를 돌아보며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

“마법사님. 그럼 소인(燒印)은 어쩌죠? 우리말을 할 줄 안다면 소인도 필요 없을 텐데.”
“그래도 찍어야 해. 오히려 그게 없으면 저 녀석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걸 아무도 안 믿을 테니까.”
“아니, 그전에 설명을 좀 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직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구요. 제가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에 스벤베르크인지 뭔지 하는 곳에 와 있는 겁니까?”

내가 짜증이 난다는 투로 묻자 중년 부인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면과 모자 때문에 얼굴을 잘 알아보기 힘든 울프하트 우체부(인지 마법사인지)가 나를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뭐라고요?"

어이가 없어 되묻는 내 목소리를 무시한 채 울프하트는 모자를 벗어들어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하얗게 빛나는 백발이 군데군데 섞인 밤색의 짧은 머리칼을 손으로 쓰윽 쓸어 올린 그는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레이디, 일단 저 녀석한테 소인 좀 찍어. 절차는 지켜야지.”
“마법사님도 참. 이제 레이디(Lady)라고 부르는 건 좀 그만두세요.”

부인은 쑥스러움을 타는 소녀처럼 까르르 웃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로히. 팔을 좀 내밀어 보겠니?”
“아, 네.”

부드러운 부인의 목소리에 무심코 팔을 내민 나는 그제야 내가 지저분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란 것을 깨달았다. 괜시리 얼굴이 붉어져서 머뭇거리고 있자니 레이디는 빙긋이 웃고는 그대로 내 손과 팔목을 살펴보며 책상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튼튼한 팔이구나. 조금만 운동을 더하면 우리 바깥양반처럼 되겠네.”
“……허.”

레이디의 말에 곁에 서있던 울프하트가 어이가 없다는 투로 웃었다. 답답해 보일 정도로 꼼꼼하게 얼굴을 가리는 그의 가면 덕에 실제로 웃는 부분은 담배를 문 입가뿐이었다.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의 탓인지 표정 없는 그의 가면이 더욱더 신기하게 보였다.

“조금 아파도 꾹 참으렴.”
“어, 예?”

밑도 끝도 없이 간호사처럼 말하는 레이디의 목소리에 놀라서 고개랄 들리자 레이디가 책상 서랍에서 꺼낸 두툼한 도장을 내 팔목에 내리누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팔목에서부터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

사람은 적당히 아파야 아프단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도장이 찍힌 곳부터 시뻘겋게 달군 쇳덩이가 온몸을 우악스럽게 파고들어오는 것 같은 무지막지한 아픔에 나는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꿰뚫은 날카로운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가까스로 멈추었던 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근질거리는 느낌이 남은 오른 팔목을 살펴보니 ‘에스벤베르크’라는 글자가 둥글게 뭉쳐있는 붉은 색의 도장이 팔목 위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다가 잠잠해졌다.

“잘 참았어. 대견하구나.”

머리칼을 쓰다듬는 레이디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고통은 가라앉았지만, 몸에 납덩이라도 들어찬 듯이 무거웠다. 울프하트는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턱하니 잡더니 한심하다는 투로 고개를 내저었다.

“체력은 별거 없군. 크란베르크 녀석은 간지러워 하지도 않았는데.”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 화를 내고 싶어도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몰려든 피로감이 집요하게 눈꺼풀을 내리눌렀다. 졸음이 쏟아진다. 레이디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용사님이 대단한 거지, 로히가 허약한 게 아니에요. 일단은 마법사님 방으로…….”

힘이 빠진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신기한 감각.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바닥을 딛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떠올랐던 몸이 툭하니 추락하는 느낌과 함께 투덜거리는 울프하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나면 왜 왔는지를 떠올려 보라고. 세계가 원한 소년.”

주문 같은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주위는 고요해졌다. 나는 그제야 몸이 시키는 대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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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로히가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by 느와르 | 2007/05/05 17:06 | 에스벤베르크 - Saga | 트랙백(1) | 덧글(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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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투덜고양이 블레냥의 뒹.. at 2008/03/08 11:26

제목 : 에스벤베르크 영웅담 패러디.
에스벤베르크 영웅담 - 1. 배달된 소년 (1) 1.사방이 온통 모래뿐인 - 아니 빌딩만한 뭔가의 뼈들도 널려있는 - 어느 곳에 소년이 망연자실히 앉아있었다.소년이 두리번 거리고 있을때 소년의 눈에 멀리서 움직이는 붉은 점이 들어왔다.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장소에서 홀로 움직이고 있는 점을 바라보고 있자니 곧 그 점은 붉은 망토를 두르고 다가오는 남자로 바뀌었다.남자는 소년에게 다가왔다."속달인가."남자는 소년이 모습을 살펴보았고 그 시선을 따......more

Commented by 겨울나그네 at 2007/05/05 17:09
1인칭 이군요!!! 느허허허허헛
Commented by 천룡진미르 at 2007/05/05 17:15
헤에, 3인칭에서 1인칭 변환인가. 더더욱 흥미로운 사가를 기대만빵이로소이다!

ps:...정말 길었어...(뒤에 꽃잎과 줄기가 분해된 잔해가 산처럼 쌓여있다.)
Commented by 우지 at 2007/05/05 17:32
리메이크버전이군요! 연재 기대하고있습니다!!!^.^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7/05/05 17:32
흠흠 시작이군요^^
Commented at 2007/05/05 17: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Master-J at 2007/05/05 18:12
....생각해보니 조낸 부조리한 상황이다....
Commented by 라파엘느 at 2007/05/05 18:15
나도 그런 꿈좀 꿨으면 <[현실도피 ]
Commented by hypnoss at 2007/05/05 18:50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군요.
Commented by 연천무 at 2007/05/05 19:03
아, 드디어 시작이군요.
고3때부터 봐오던터라 사가가 사라졌을때 참 안타까웠습니다.
무지하게 기대됩니다.
Commented by 이루아 at 2007/05/05 19:19
아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날씨좋다 at 2007/05/05 19:23
오, 돌아온 로히~.
Commented by 룸룸 at 2007/05/05 20:14
오오오옷 +_+!
Commented by 졸랄라 at 2007/05/05 20:32
아아 이게 지금까지 써오시던것의 본편인 겁니까. 드디어...
Commented by 文乞 at 2007/05/05 21:39
왔다아아아아아아!!!!!!!!!!!!!!!!!!!!!!!!!!!!!!!!!!!!
Commented by wino at 2007/05/05 21:50
1인칭입니까. 이제 로히의 속내가 낱낱이 밝혀지겠군요.
3인칭보다 나름대로 제약은 있으시겠습니다만, 건필하시길 빕니다.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5/05 21:57
로히가 돌아왔군요! 사실 로히는 관심 없고 다른 11인이 궁금...(야)
Commented by Bahn at 2007/05/05 22:55
눈팅만 하던 반입니다;
우와아, 드디어 로히가 돌아왔군요.
솔직히 로히보다는 마이어스가 더 보고싶었습니다+ㅅ+
Commented at 2007/05/05 22: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적록색맹 at 2007/05/05 23:34
그들이 돌아왔군요!!!
Commented by laystall at 2007/05/06 00:16
파이팅입니다.
Commented by 【田】 at 2007/05/06 00:36
새거다! 새거다! 새거다!!!!
Commented by at 2007/05/06 01:41
드디어 로히가 돌아왔다! 돌아왔다! 돌아왔다아아!! 브라보!
그저 브라보한 글 브라보하게 써주시길 브라보하게 빌겠습니다!
Commented by ㅇㅅㅇ at 2007/05/06 01:56
돌아왔다아아아아아아!!!!!!!!!!!!!!
Commented by 라네이르 at 2007/05/06 04:00
기다렸습니다!

이제 넘어야 할 산이 한가득인 로히가 어떻게 시련을 딛고 일어나련지 기대해야겠군요.

기다린만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Commented by 미라쥬나이트 at 2007/05/06 04:13
왔다아~~~~ 에스벤베르크가 왔다아~~~우하하하하하
Commented by Shoo at 2007/05/06 07:17
로히 ;ㅁ; 그리웠어!!!!!!!
로히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엉엉
Commented by ユリア大尉 at 2007/05/06 15:34
컴붹한 로휘, 또 열심히 굴러야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웰컴입니다!
Commented by R의 향연 at 2007/05/06 19:52
컴백 로휘/ㅁ/
...그나저나 그 어감을 싫어한 모양이군요, 세계 양은.
Commented by blesshy at 2007/05/06 20:10
왔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ㅁ<아아아아아아아아>ㅁ<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p,s
그나저나 저 소인, 설마 발송or착신 날짜도 안찍혀있는건가요!
그러고보니 배달물 소인은 발송지에서 찍어야되는데 어째서 착신지에서 찍는건가요오오오오
(소인찍힌 날짜는 중요하다구요. 특히 이벤트 우편접수할때)
Commented by 느와르 at 2007/05/07 14:31
겨울나그네님//과감하게 바꿨습니다.

천룡진미르님//텀이 길어야 재미가 두배...는 아닌것 같기도 합니다.

우지님//예입. 힘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比良坂初音님//시작입죠. 힘내겠습니다.

비공개 百님//저야말로 제 글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힘내서 올리겠습니다.

제이형님//황당함이 이룰 말할수 없습니다.

라파//야한꿈이 아니라 실망이다.

hypnoss님//초반전개는 리뉴얼 전이랑 비슷한터라.;

연천무님//기대하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런, 따라해버렸다.

날씨좋다님//로히의 귀환입니다.

룸룸님//다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레이브님//이제 본격적인 장편으로 나가야...

프레//간다!!!!!!!!!!!!!!!!!!!!!!!!!!!!!!

위노님//3인칭으로 하니 너무 글이 날아다니는 경향이 있어서...이번엔 과감하게 1인칭으로 도전할까합니다.

제절초님//11인의 이 식지않는 인기란...

Bahn님//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적록색맹//돌아왔습니다!

레이스탈님//예입. 힘내겠습니다.

미르//새거다. 새거.

J²님//저, 저도 브라보하게 쓰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과연 브라보하게 쓸수 있을지...!

ㅇㅅㅇ님//돌아왔습니다아!!!!!!

라네이르님//로히가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마이어스를 타...지, 지켜봐 주십시오.

미라쥬나이트님//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 핫핫.

슈님//맡겨만 주십시오.

ユリア大尉님//더 빡세게 굴러야 겠죠. 음음.

R의 향연님//전 애인이 부르던 이름이니까요.

blesshy//그것은 에스벤베르크의 신비!
Commented by 하로君 at 2007/05/07 16:35
드디어 로히군이 돌아왔군요.
1인칭이라.. 굉장한 도전이지 않으십니까. =0
또 즐겁게 기다릴 글이 늘었군요. =)
Commented by 平凡 at 2007/05/07 19:11
올것이 왔구나!!!! 로히따윈 필요없다!! 대마왕 브리즈를 영접해야 할 시간이 왔군요~
Commented by G.O.B at 2007/05/07 21:04
왔다!!
Commented by 드윕 at 2007/05/07 22:03
아아아아아아아아!! 돌아왔군요! 다시 시작하는군요! 우아아아아아앙!
Commented by 스펙터 at 2007/05/08 01:49
기다렸습니다.
Commented by 로그인귀찮ㅇㄴ로망 at 2007/05/09 09:59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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